250630
일기를 쓰기 위해 갤러리를 뒤적거린다.
오늘의 나는 무엇을 하였는가.
오늘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법적으로 1일은 무엇인가. 사회 규범적인 1일은 무엇인가.
최근에 회사 내 교대근무 운영개선 TF에 참여하게 되면서 노동법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겼다.
물론 참여 전에 윤지영 변호사의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이라는 책을 보고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터였다. 나도 작년부터 회사 내에서, 그 안에서도 지역 안에서, 내가 일하는 지역에서 노동조합 간부를 맡게 됐다. 말이 좋아 간부지 사실은 60명 정도 되는 직원들 중에 지부장, 대의원, 노동기자를 뽑는데, 그중 대의원을 맡고 있다. (회사 규정상 조합원 46인 이상은 대의원이 2명이지만, 60명의 직원들 중 조합원은 45명으로 유일한 대의원이다.)
이 얘기를 왜 하냐면, 노동법에서 1일 근무에 대해서 시업시간과 종업시간 사이에 자정을 지나더라도 연속근무에 대해서는 1일 근무로 본다. 쉽게 얘기하자면, 저녁 6시에 시작해서 아침 9시에 끝난 근무는 시업시간인 저녁 6시가 속한 날짜의 일일 근무시간에 속한다는 얘기다.
이 관점에서 오늘은 자정이 지났지만 6월 30일이다.
이 길고 긴 얘기를 한 이유는 무엇인가. 갤러리를 뒤적거리다가 6월 30일이지만 어젯밤 자기 전에 찍어둔 스크린샷을 봤기 때문이다. 오늘 일기에 이 내용도 적어도 될까 생각하다가 이내 포기했다. 사회적인 규범상 분명 6월 30일이지만 통념상으로는 6월 29일 24시 30분인 셈이다. 왜? 내가 잠들기 전에 찍었기 때문에.
그럼 오늘 일기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바로 아침에 눈을 뜬 07시부터다.
물론 사람에 따라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난 새벽 세시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했는데? 난 밤새고 아침9시에 자서 오후 5시에 일어났는데? 등등.... 그렇다면 역시.. 알아서 선택하세요.. 이건 제 일기입니다..라고 할 수 있지만 아무튼, 적당한 선에선 사회 통념상의 하루를 적용할 수 있겠다. 물론 아침 9시에 자서 오후 5시에 일어나면 하루가 밀리는 느낌이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내가 사회 통념상의 하루를 벗어나서 살고 있는데.
또 쓸데없이 서론이 길었다. 본론보다 서론이 긴 내 습관을 고쳐야 하지만, 서론이 길어야 짧은 본론이 이해가 된다. 본론을 짧고 굵게 전달하려면 서론에 대한 상호이해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게 내 대화습관이다. 서로의 이해를 기반으로 한 짧은 본론. 이게 되려면 서론이 길고 서로의 이해가 충분해야 한다. 물론 이 일기에는 전혀 의미 없다.
내 첫 일기다 보니 내 성격에 대한 얘기가 길었다. 이젠 정말 오늘 하루에 대한 고찰을 해보자.
회사얘기는 사실 사진을 올리기엔 대외비인 내용이 많고(국가보안시설이다), 재미도 없다. 내가 오늘 회사에서 힘들었다!라고 아무리 얘기해 봐야 아무도 와닿지 않을 거고 나도 공감할 수 없다. 내가 돌아봤을 때는 의미 있겠지만 얼마나 돌아보겠나. 그건 내 업무 수첩을 돌아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오늘은 젊은 직원들끼리 회식이 있었다. 우리끼리 회식인 만큼 더 재밌고, 더 가볍고, 더 편안한 자리였다. 우리끼리 웃으면서 재밌는 자리. 사실 잘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막내라인이고, 부족한 게 많다. 선배들이 많이 챙겨주고, 보듬어주고, 믿어주는 후배지만 그만큼 어깨가 무겁다. 좋게 말하면 믿음직한 후배고, 안 좋게 말하면 부담감이다. 물론 굳이 안좋게 말할 필요도 없고, 안 좋게 볼 생각도 없다. 그만큼 선배들이 날 많이 좋아해 준다는 얘기니까.
사실 가까운 선배들과의 자리를 정말 좋아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그 선배들이 다들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고, 술자리에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서 같이 볼 자리가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많이 아쉬워하기도 했다.
오늘은 그동안 다 같이 모이지 못해 아쉬웠던 선배들과의 자리였고 너무 재밌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역시 내 후배의 존재다. 나도 막내라인이라고는 했지만 후배가 있다. 나나 그 후배나 참 힘든 위치다. 더 이상 후배가 들어오지 않고,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다. 후배라고 부르기도 애매하고, 어떻게 보면 보조업무이기 때문에 경력보단 나이를 많이 따지는 사무실 분위기이도 하다. 물론 내 선배들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지나갈 거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나도 어느덧 9년 차. 내 후배는 8년 차다. 군대 2년을 제외해도 7년, 6년씩 근무를 했다. 여전히 우리는 막내라인이고 후배는 들어오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항상 밑에서 두 번째 자리에 있는 건데 그 후배는 항상 막내자리에 있고, 나는 그 후배를 항상 끌고 다니고 싶은 선배다. 내가 선배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말을 할 수는 없다. 오늘 술자리에 그 후배는 근무하느라 못 나왔기 때문에. 사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선배는 나는 기회가 충분히 있고, 언제든 자리할 수 있으니 내가 대신 근무를 서겠다. 너는 선배들과 더 어울리고 많이 얘기해라.라고 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업무 특성상 그렇게 얘기해주지 못했고, 선배들과 날짜를 조율하는 상황에서 다른 날짜를 얘기하면서 후배를 참석하도록 도와주지 못했다.
물론, 그 후배는 술자리를 안 좋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꼰대여서 그럴 수도 있지만, 특히나 보조 업무인 우리에게는, 선배들과의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 그 후배도 그걸 알기 때문에 안 좋아해도 같이 어울릴 때도 있고, 같이 저녁 먹고 어울리는 자리는 좋아하는 걸 아니까 내가 더 챙겼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있다.
장황하게 썼지만, 교대근무하는 사람과 매일 출근하는 사람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차이가 있다. 나는 매일(평일에) 출근하기 때문에 매일 근무자를 만난다. 매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새로운 유대관계를 쌓는다. 하지만 교대근무하는 사람은 같은 조 사수/부사수 사이에만 충분한 유대관계를 쌓는다. 그렇기 때문에 업무 외적으로 유대관계를 쌓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그건 교대근무자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나는 매일 출근하기 때문에 언제든 유대관계를 쌓을 수 있고, 날짜를 어떻게 잡든 참석할 수 있지만 교대근무하는 후배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 후배를 신경 써서 참석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좋은 선배란 무엇일까. 업무적으로만 좋은 선배면 충분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 사무실 유행어는 리틀 ㅇㅇㅇ다. 선배들이 좋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후배들도 그 사람을 따라가길 원하고, 점점 아래로 내려온다. 9명이 한 팀인 우리도 모두가 선배를 따라 기차놀이하듯 리틀 ㅇㅇㅇ의 모습으로 선배를 따라가고 있다. 업무면 업무, 운동이면 운동, 사회생활이면 사회생활. 업무 외적으로도 닮고 싶은 모습이 많은 선배. 인간적으로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선배.
그런 선배가 되고 싶다. 물론 드라마 같은 얘기다. 현실에선 쉽지 않은 얘기다. 하지만 내 선배들은 그 어려운 걸 해냈기 때문에 나도 해내고 싶다. 후배와는 한 살밖에 차이 나지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선배 모습이 n 년 뒤 내 모습이길 내가 바라듯이 그 친구도 1년 뒤에 내 모습을 원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나는 그 친구에게 좋은 선배로 인정받고 있는 거겠지.
오늘 당고누나한테 추천받은 노래 중 미생 OST인 이승열의 '날아'라는 노래를 자꾸 듣게 된다. 음원버전도 아닌 뮤비 버전으로. 미생 극 중에 오상식의 대사 '바둑엔 이런 말이 있어. 미생, 완생. 우린 아직 다 미생이야'
바둑으로 치면 아직 집을 지어가고 나름대로의 형세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내 한 수가 악수가 되어 불리한 형세로 전환될 수 있다. 하지만 맞다고 생각하는 수는 두어야 한다.
내가 선택한 일에 후회하지 않는 것. 그날의 결정이 최선이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악수가 될지언정 내가 가진 정보들 중에선 최선의 수였다. 그럼 됐다. 다시 돌아가더라도 같은 결정을 할 테니까. 그렇게 한 수 한 수 두다 보면 형세판단을 하게 되겠지. 형세판단은 객관적이다. 흑과 백 사이에 누가 몇 집 더 우세한지. 우리의 인생은 이분법적이지 않겠지만 옳고 그름 사이에 옳음이 몇 집 더 우세할지. 그게 내가 살아가는 방향이다. 남들이 틀렸다고 생각하더라도 나에게, 우리에게 더 좋은 수라고 생각되면 나를 믿고 두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
https://youtu.be/ZfGzXCUqlJg?si=I4 HygoeUEztwisoo
- 당고누나의 추천곡, 이승열의 '날아' -
그냥 선배들하고 술 한 번 마신 거가 지고 이런 개똥철학을 길게 쓰다니 난 아무래도 문창과에 갔으면 대성까진 아니어도 중박정도는 쳤을 수 있겠다 싶다. 아무튼 오늘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