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한 여행지 여수
내가 여수를 언제 갔던가.
스무 살의 여름 군대 휴가 나와서 한 번. 고등학교 친구들과 셋이서 워터파크를 갔던 기억이 있다. 수영을 못하는, 물을 무서워하는 나에겐 좋은 기억은 아니니 패스하고.
재작년 2월. 인사이동 시즌에 한 달 정도 교대근무를 했다. 새로 전입온 사람이 교대근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설비를 익힐 때까지 내가 교대근무에 들어간다. (생각해 보니까 근 5년 동안 매년 그래왔는데 작년엔 왜 기억이 없지?)
암튼 2월 한 달 동안 교대근무를 하게 되면서 놀러 갈 계획을 세웠다. 교대근무의 최대 장점인 평일에 쉬기를 어떻게든 누려야 했다. 어딜 가도 사람이 별로 없고 쾌적하고 저렴하기까지 하다. 이 좋은 기회를 어찌 놓치랴.
마침 그때 일을 쉬고 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아무도 여행가지 않는 2월 말, 그것도 화수목, 회사 복지를 이용해 오동도 앞 소노캄 여수에 방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지옥의 3인큐가 시작됐다.
나는 아침에 퇴근하고 바로 열차를 탔다. 열차가 전주를 지나갈 때 친구들이 탔다. 나는 야간근무를 했고, 친구는 밤새 메이플을 했다고 한다.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고 체크인하고 낮잠을 잘 계획이었다. 당연히 피곤하기 때문에 술은 1병만 시키고 셋이 나눠먹기로 했다. 분명히 계획은 그랬다.
그런 우리가 먹은 점심은 복춘식당의 아구탕.
비주얼은 별로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비주얼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린 피곤했고, 유명한 맛집에서 웨이팅까지 했다. 그저 맛있게 한두잔 곁들이며 먹을 수 있으면 충분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모두의 눈이 떠졌고 우린 자연스럽게 각 1병을 했다. 처음부터 각 1병 할 계획 아니었냐고? 당연..하진 않고 반반 정도로 해두자. 나도 피곤해서 많이 마실 생각은 없었다.
아구탕이라는 음식 자체를 처음 먹었는데 이 엄청난 감동을 뒤로하고 숙소에서 또 한 번 바다뷰에 감동을 받으며 낮잠을 잤다. 햇살이 참 좋았던 소노캄 여수.
이른 저녁 우리는 자연스레 횟집을 찾았다. 바닷가에 왔으면 횟집을 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뭐? 바닷가 사람들은 잘 안 간다고? 전주사람이 전주비빔밥 먹는 것보다는 많이 갈 거다. 전주사람의 전주비빔밥 초이스는 제로거든..
아무튼, 관광객 맛집으로 유명한 희망선어가 원래 목적지였다. 근데 이날 쉬는 날이었던가. 영업을 안 하고 있었고, 근처 횟집을 찾던 중 바로 앞에 평점이 애매한 횟집이 있었다. 하지만 스무 살 여름 바다가 보이는 횟집에서 비싸게 먹었던 기억 때문에 바다가 안 보이지만 희망선어와 가까웠던 엔돌핀선어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이곳은 그냥 내가 살면서 가본 횟집 중에 탑이다. 다녀온 지 2년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이 집을 이길 횟집을 보지 못했다. 당연히 겨울이라는 계절도 한몫했겠지만 겨울철 다른 횟집을 가도 이만한 감동을 느낄 수 없었다. 이 이후로 여수 여행을 계획한다면 이 집은 필수코스였다(실제로 가진 않고 항상 계획만 세웠지만).
사진을 본다면 이해가 쉬울 거다. 회가 처음 나왔을 때 안 찍고 왜 중간에 찍었냐라고 물으신다면 대답해 주는 게 인지상정. 아구탕도 그렇고 선어회도 그렇고 사진을 찍을 생각은 없었다. 먹으면서 감동을 느끼고 뒤늦게 찍었다.
아직도 선명하다. 김에 선어회 한 점, 직접 담근 깨끗이 씻은 묵은지 하나, 쪽파 양념장 올려서 싸 먹는 그 맛. 멍게, 두부, 오징어, 굴. 내가 좋아하는 수많은 반찬들. 심지어 굴은 잘 먹는다고 계속 주셨다! 굴만 세 접시는 먹은 것 같다(다 내가 먹은 것 같지만). 심지어 직접 담그셨다는 묵은지도!! 이런 집은 방법이 없다. 그냥 술을 많이 마시고 맛있게 먹고 기분 좋게 나오는 것. 삼박자를 잘 맞추면 된다. 이 외에 다른 방도는 없다. 그저 많이 먹고 많이 마셔야 한다.
내 여수여행은 여기서 끝났다. 2박 3일인데 왜 여기서 끝났냐고? 이 뒤로는 사진이 없다.. 기억력을 끌어낼 매개체가 없다. 그래도 기억을 끄집어내자면 둘째 날도 늦게 일어나 낮술을 하고.. 낮잠을 자고.. 저녁..은 낭만포차거리에서 먹었던 것 같다. 분명 갓김치삼합이었는데 갓김치는 추가해야 했다. 아니 그럼 이합이지! 왜 삼합이야! 갑자기 화가 나네..
여수에서 정말 잠자고 술만 마신 이유는 이미 그전부터 자주 왔기 때문이다. 아마 스무 살에 가고 재작년에 가기 전에도 2~3번 정도 갔을 것이다. 루지도 타고 케이블카..는 안 탔지만 구경은 다 했다. 벽화마을에 에어비앤비로 독채를 빌리고 노트북을 챙겨가 숙소에서 게임하고 온 기억도 있다. 암튼 하려던 말은 이게 아니고.
2박 3일 여수 여행기인데 첫날에 끝낸 두 번째 이유는 마지막날 해장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첫날은 셋이 마셨지만 둘째 날 다른 친구가 합류했다. 내 여수는 아구탕과 선어회가 전부였는데 이 친구는 늦게 와서 둘 다 먹지 못했다. 난 이 친구에게 아구탕을 소개시켜준다는 핑계로 해장을 하고 싶었는데 이 친구가 고른 점심은 인도커리였다. (대체 여수까지 가서 왜 인도커리인건데요 멀리서 찾아다니는 인도커리 맛집도 아니고 그냥 동네에 있는 인도커리잖아요 대체 왜)
아구탕 3 : 인도커리 1이었지만 민주주의 원칙을 따르기엔 늦게 온 친구의 성격이 받아주지 못했다. 우린 지는 척 룰렛을 돌리자고 했다. 마치 단일챔 투표처럼. 하지만 우린 75%고 인도커리는 25%니까 질 거라는 생각은 1도 안 했다.. 하지만 그게 우리의 실수였다.
숙취에 찌든 채로 인도 뮤비가 홀에 크게 틀어져있는 식당에서 인도커리를 먹었다. 해장은커녕 숙취가 심해지기만 했다. 아직도 그날의 선택을 후회한다.. 내 아구탕.. 그 뒤로 난 아구탕을 먹지 못했다.. 3~4년간 매년 가다가 작년에 쉬었다. 올해도 이제 여름이니 여수를 갈 계획은 없다. 하지만 겨울이 되면 언제나 생각난다.
글을 끝내지 못한 건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왜 맛있는 제철음식들은 가을, 겨울에 많을까. 여름을 앞두고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겨울에 가야 할 여행지가 많다. 통영도 가야 한다. 겨울철 통영 굴을 아직 먹지 못했다. 가을엔 전어를 찾아 떠나야 한다. 대하도 먹어야 한다.
여름엔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할까. 네이버에 검색해 보니 1번은 삼계탕이다. 하지만 역시 삼계탕은 사시사철 제철이다. 6번은 오이다. 오이는 사시사철 맘에 안 든다.
여름에 제철인 해산물을 검색하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은근히 많다. 민어(는 못 먹어봤지만 먹어보고 싶다), 전갱이, 오징어.. 더 있는 줄 알고 스크롤을 내렸는데 왜 끝났지? 하지만 괜찮다. 내 식욕은 사시사철 제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