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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이태원 참사에 관한 내 이야기

by Dimas 2022. 11. 1.

먼저 내 상황을 얘기하자면, 나는 그 날 그 시간에 이태원에 있었다.

친구가 할로윈에 이태원을 가자 했었고 나는 올해가 아니면 할로윈 축제를 이태원에서 즐길 날이 없을거라 생각했다. 나에게 할로윈 축제를 가자고 얘기해줬던 친구에게 너무 고마웠고, 정말 너무 가고싶었다.

물론 내가 할로윈 축제를 못즐겨본건 아니다. 군대에 있을 때, 상병 시절에, 군대 동기들과 휴가를 맞춰 홍대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물론 그 날 우리 사무실(내가 군대가기 전 속해있던 사무실)에서는 관로사고가 터져 다들 바쁘게 일을 해야했지만 나는 병역휴직 신분이었고, 소속은 해당 사무실이 아닌 본사(휴직)였기에 그냥 연락만 드렸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할로윈을 본격적으로 즐기기 위해 부분적이지만 분장도 해봤고, 망토도 샀다. 물론 내 친구들은 더 심하게 했지만 나는 이걸로도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대학교 친구가 날 불렀고, 사람이 좀 많았으면 좋겠다는 얘기에 군대 후임들을 불렀다. 군대에 있을때나 후임들이지 지금은 다 친구인 사이,,지만 아무튼,, 그렇게 5명이서 만나게 되었다.

먼저 군대 후임들끼리 만나서 군대얘기나 하면서회포를 풀던 중 대학교 친구가 이태원에 도착했다는 얘기에 데리러 나갔다. 여기서부터가 참사에 대한 이야기 시작이다.

아직도 기억나는 부분이다. 내 친구가 이태원역에서 내렸고, 나는 우리 술집이 네이버지도에 간략하게 나오지 않으니, 술집을 찾기 어려워 직접 데리러 가겠다고 했다.

우리가 있었던 곳은 저 빨간색 부분으로 술집에 가기 위해 줄이 엄청 길던 이태원에서 몇 안되는 웨이팅이 없는 술집이었다. 우리는 정말 그거 하나만 보고 들어갔었고, 그러다보니 지도에서는 잘 나오지 않았던 가게였다.

아무튼 내가 친구를 데리러 갔던건 거의 8시가 다 되어서였다. 물론 나는 6시에 이태원에 도착해 이미 한 바퀴 돈 후였고, 가게를 잡고나서 그 친구가 왔다. 아무튼, 8시에 저 술집에서 내려가 이태원관광특구홍보관 앞을 지나 이마트24 방향으로 꺾어 이태원역 1번출구를 향했다. 참고로 이마트24 편의점 앞이 사고가 난 그 장소다. 나는 사고가 나기 1~2시간 전 그 장소에 있었던 것이다.

나와 내 친구들이 있었던 식당
내가 지나간 경로
사고가 났던 위치

사고가 나기 2시간 전인 8시 나는 이태원관광특구홍보관 앞에 있었다. 내 앞에는 이태원에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걸 방송하는 아저씨가 있었고, 그 뒤에는 그 아저씨 방송에 맞춰 V를 하던 외국인 형님이 있었다. 나는 그 뒤에서 '친구가 이태원역 1번출구에 왔다는데 나는 언제쯤 거기에 갈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술집에서부터 이태원역 1번출구 앞 큰 길까지 가는데 대략 30분이 걸렸다. 네이버 지도 기준 150m다. 평균속도로 봐도 분당 5m였다. 우회전하기 전까지 체감속도는 1분에 10걸음이었다. 이건 내가 지금도 회사에서 하는 얘기다. 분당 10걸음이었고, 내가 두 발을 모두 들었어도 뒤에서 밀어서 갔을거라는 얘기.

아무튼 서론이 길었다.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는 그거다. 이미 사고나기 전부터 이태원은 통제가 안되는 거리였다. 

내가 느낀 사고나기 1~2시간 전 골목 통행방향

내 체감상 내가 느낀 통행방향이다. 양 끝에서는 우측통행에 맞춰 각자의 방향에 맞춰 갔지만 가운데에서는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자동차처럼 중앙선이 있는게 아니다보니 맨 끝에서만 방향에 맞춰 가지만 가운데에선 서로 대치하고 있었고, 서로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 뒤에서는 "밀어~!"를 외치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뚫고 가는 사람도 있었고, 뒤에서 밀지만 앞에 있는 사람과 부딪히는게 싫어 버티는 사람이 있었다.

즉, 이미 사고가 나기 1~2시간 전부터 똑같은 양상이었다는 소리다. 예견된 사고였다. 내가 지나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버틸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사람이 더 많아진 후에는 버틸 수 없었다는 소리다.

나는 운이 좋아 살았지만, 내가 만약 1시간 뒤에 나갔었다면 나도 그 피해자 중 한 명이었을 거다. 그 사실이 나를 더 무섭게 만든다. 내가 이 길을 지나가지 않았더라면, 사람이 많던 시간에 지나가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사고에 참사에 이렇게까지 무거운 마음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참사에 휘말리고 있었고,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게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고, 이 글을 쓰고있는 이유이다.

나와 내 친구들이, 우리가 술집에서 나올 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태원에 사람이 너무 많으니 다른데로 옮기자"

이 이야기를 나누고서 술집에서 나왔을 때 이미 경찰들과 소방대원이 도착해 있었고, 내가 지나갔던, 사람이 너무 많아 1분에 10걸음 움직이던 그 길을 경찰들이 막고서 2~3명씩 짝을 지어 사람들을 들 것에 실어나르고 있었다.

우리는 길을 우회해 큰 길로 나아갔고, 큰 길에서는 한 명이 아닌 수십명이 CPR을 받고있었다. 나는 다행히 키가 작아 CPR을 받고 있던 사람을 보지 못했다. CPR을 행하던 사람만 봤다. 나는 이게 정말 천운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1~2시간 전 그 길을 지나가 피해를 입지 않았고, CPR을 받는 사람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것.

이태원을 벗어나기까지 2시간 정도 걸렸다. 이태원역으로 들어갔고 막차라는 외침에 뛰어들어갔지만 이미 사람이 너무 많았고, 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역을 나서 30분을 걸었고 택시를 잡는데까지. 우리가 술집에서 나와 택시를 타는데까지는 약 2시간이 걸렸다. 그 2시간동안 계속 새로운 구급차가 이태원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그 사이렌 소리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자리를 옮겨 술을 더 마셨고, 비싼 술을 마시기도 했고, 큰 소리에 친구들의 말소리가 안들릴 정도로 시끄러운 술집에 있었다. 그리고는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겨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너무 피곤해 노래방에서 자기도 했다. 하지만 제정신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이제서야 그 날의 사이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뉴스를 보지 못한다. 그 날의 영상들이 뉴스에 나올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되고 쉽게 잠에 들지 못한다. 주변에는 그냥 가볍게 얘기했다. 나도 그 날에 이태원에 있었지만 나는 안전하고 다행히 살아남았다고.

내가 만약 사고가 나기 전 그 길을 지나가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나는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또, 비슷한 사유로 곁을 떠난 친구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그 날 피해자를 위해 CPR을 행했더라면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졌을까. 나는 그동안 그 날을 위해 CPR을 열심히 배웠던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내가 하고싶은 말은 그거다. 만약 가운데에서 중앙선 역할을 해주던 사람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어쩌면 나도 그 수많은 희생자들 중 한 명이지 않았을까.

하여튼 10월 29일 그 날은 참 이상한 날이었다.

아침부터 지진이 나서 걱정이 담긴 전화를 받았고, 할로윈 분장을 하고 인스타에 올렸을 때, 낮에 집회를 갔던 내가 피해를 입었을까 걱정해주던 친구의 전화와, 내가 이태원을 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걱정이 담긴 연락들을 받고서 참 이중적이게도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나가다 봤을 수도 있는 희생자들이 목숨을 잃은 상황에서도 나를 걱정해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참 감사하고 미안한 하루였다.

나는 다시는 이태원에 가지 못할 것 같다. 그 날의 사이렌소리가 잊히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내일을 살아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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